청수리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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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암벽식물지대. 천연기념물 제376호. 면적 247,935㎡. 산방산은 전형적인 종모양의 산이며, 해발 395m로서 조면암질 안산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쪽 중앙에 해식동굴인 산방굴이 있다.
제주 올레길
올레코스는 10km~20km의 거리로 구성됐다. 각각의 코스는 도보로 3시간에서 6시간까지 걸리는 짧지 않은 길이다. 시속 60km로 달리던 제주 여행을 두 발로 시속 3km의 여행으로 바꿔 시작했다. 동쪽 성산읍에서 시작하는 1코스부터 모든 코스를 가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한 코스에 하루씩 잡아도 열흘은 넘게 걸린다. 넉넉지 않은 일정과 게으른 몸을 핑계로 중문단지 리조트에서 바로 이어지는 7번과 8번 코스를 걸었다. 하얏트 호텔 뒤로 난 샛길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갔다. 깎아지른 절벽이란 뜻의 ‘갯깍’이 눈앞에 나타났다. 외국인 관광객 몇몇은 벌써 여름이다. 비키니 차림으로 해안에서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둥글고 큰 돌을 밟으며 걸으니 도저히 풍경에 눈을 돌릴 수 없다. 돌 사이로 빠지지 않기 위해 바닥만 보며 걸었다. 갯깍은 가까이 갈수록 점점 더 웅장해진다. 사람 키의 스무 배는 족히 넘을 듯한 높이에 검은 현무암은 웅장하다. 절벽 위엔 푸른 나무와 풀이 자라 열대의 이국적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주 오는 사람들이 눈인사를 건넨다. 여유가 느껴진다. 사람들의 겉모습은 서울 지하철역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똑같지만 이곳에선 걷는 모습, 인사하는 표정이 다르다. 한층 여유가 느껴진다. 길이 사람을 여유롭게 만든다. ‘장관’, ‘절경’이 길 가운데 나타난다. 각 코스마다 빼어난 풍광들이 널려있으므로 어느 곳을 선택해도 아쉬울 것 없는 것이 ‘올레’다.
오설록티뮤지엄
오천 년이라는 인류와 역사를 같이하는 가장 오래된 기호식품인 녹차 제주도는 유배시절의 추사 김정희 선생께서 차를 가꾸고 초의선사 등 많은 다인들과 차 생활을 하신 유서깊은 차 유적지로, 좋은 차가 생산되기에 최적의 기후적,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오’설록은 2001년 9월 1일 개관, 제주도 서광다원 입구에 위치,건물전체가 녹차잔을 형상화하였으며, 동서양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문화의 공간이자, 자연 친화적인 휴식공간이다. 오’설록의 ‘오’는 경쾌한 감탄의 의미와 함께, origin of sulloc, only sulloc, of sulloc cha 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녹차와 한국 전통 차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학습공간으로 설록차의 모든 것을 체험 할 수 있다.
주상절리
주상절리는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지표면에 흘러내리면서 식게되는데 이때 식는 과정에서 규칙적인 균열이 생겨 형성된 것이다. 용암은 표면부터 식을 때 균열이 육각형 모양으로 형성되고 점점 깊은 곳도 식어가면서 균열은 큰 기둥을 만들어낸다. 용암이 식는 속도와 방향에 따라 주상절리의 모양과 크기가 결정된다. 화산암(火山岩) 암맥이나 용암(熔岩), 용결응회암(熔結凝灰岩) 등에서 생긴다. 절리(joint)는 암석의 틈새기나 파단면(破斷面)으로서, 암석의 틈새기나 파단면을 따라가면서 일그러짐(변위)이 없거나 또는 거의 일그러짐이 인정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면(面)에 평행한 일그러짐이 있는 것을 단층(斷層)이라고 한다. 화강암이나 두꺼운 괴상사암(塊狀砂岩) 등과 같은 균질의 암석의 경우에는 일그러짐을 인정할 실마리가 없기 때문에 절리와 구별하기가 어렵다.
외돌개
2011년 6월 30일 문화재청이 쇠소깍, 산방산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했다. 높이는 20m로 삼매봉 남쪽 기슭에 있으며 바다 한복판에 홀로 우뚝 솟아 있다고 하여 '외돌개'라 한다. 15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섬의 모습이 바뀔 때 생긴 바위섬으로 꼭대기에는 작은 소나무들이 몇 그루 자생하고 있다. 오르기에는 너무 위험한 기암절벽의 형태이며,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인다. 장군석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름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고려 말기 탐라(제주도)에 살던 몽골족의 목자(牧子)들은 고려에서 중국 명(明)에 제주마를 보내기 위해 말을 징집하는 일을 자주 행하자 이에 반발하여 목호(牧胡)의 난을 일으켰다. 최영 장군은 범섬으로 도망간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외돌개를 장군의 형상으로 치장시켜 놓고 최후의 격전을 벌였는데, 목자들은 외돌개를 대장군으로 알고 놀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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